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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자 : 강기봉 freekgb@gmail.com

 

저작물의 이용허락이나 양도를 위해서는 이와 관련한 당사자들 사이에 계약이 이뤄지게 됩니다. 계약에 관한 사항은 민법에서 다뤄지고 있고 저작권법은 민법의 특별법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당사자들의 행위에 대해 민법의 법리에 따라 판단하게 됩니다(일반법에 특별법이 있다면 특정 사안에 대해 특별법의 규정을 먼저 적용하고 규정이 없다면 일반법의 규정에 따라 판단합니다). 

 

아래의 대법원 판례에서, 대법원은 저작물의 이용과 관련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을 저버린 당사자에게 민법상 불법행위(민법 제750조)가 적용될 수 있다고 판결합니다. 이용허락이 없이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에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는데, 대법원은 이와는 별개로 당사자 사이의 계약을 위한 협상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계약의 일방 당사자인 이용자가 일방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민법상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9다268061 판결). 

 

3.  민법상 불법행위가 성립하는지 여부(상고이유 제4, 5점) 

가.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위법행위는 불법행위의 핵심적인 성립요건으로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 법질서의 관점에서 사회통념상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도 포함할 수 있는 탄력적인 개념이다.

불법행위의 성립요건으로서 위법성은 관련 행위 전체를 일체로 보아 판단하여 결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문제가 되는 행위마다 개별적ㆍ상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1. 2. 9. 선고 99다55434 판결 등 참조). 소유권을 비롯한 절대권을 침해한 경우뿐만 아니라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도 침해행위의 양태, 피침해이익의 성질과 그 정도에 비추어 그 위법성이 인정되면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대법원이 소유권 등 물권을 침해하지 않은 경우에도 민법 제750조의 위법행위 개념을 활용하여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타인의 성과물을 도용하였다는 이유로 위법성을 인정한 대법원판결도 이에 속한다. 즉, 대법원은 경쟁자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구축한 성과물을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여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경쟁자의 노력과 투자에 편승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얻고 경쟁자의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0. 8. 25.자 2008마1541 결정 참조).

또한 대법원은 계약 교섭의 부당파기에 관한 사례에서 일정한 요건하에 불법행위의 성립을 긍정해 왔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다53059 판결, 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2다32301 판결 등 참조).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어느 일방이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가지게 된 경우에, 그러한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 상대방이 오히려 상당한 이유 없이 이를 침해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 체결의 준비 단계에서 협력관계에 있었던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상대방의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면서 상대방의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칠 뿐만 아니라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를 위반한 것으로서 그러한 행위의 위법성을 좀 더 쉽게 인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계약의 협상 단계에서 일방 당사자가 무단으로 계약 상대방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한다면 그 자는 (이용허락이 있기 전이므로) 저작권 침해의 책임을 질 수 있는 것 이외에, 신의성실의 원칙을 저버린 행위에 대해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위법한 행위로 불법행위를 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관련 글: 2021.08.19 저작물 불성립 시에도 그 성과물의 이용이 불법행위로 성립하는 경우

 

판례 원문 :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9다268061 판결)

 

【판시사항】


[1] 저작권법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저작물’의 요건인 ‘창작성’의 의미
[2] 甲 사단법인의 저작물은 조선시대 실학자 서유구가 편찬한 ‘임원경제지’ 중 하나인 ‘위선지’의 원문에 교감(校勘), 표점(標點) 작업을 한 부분과 이를 번역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위 교감ㆍ표점 부분이 창작성을 가지는지 문제 된 사안에서, 甲 법인의 저작물 중 교감한 문자와 표점부호 등으로 나타난 표현에는 甲 법인의 창조적 개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사례
[3]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기 위한 요건 /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해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지 판단할 때 대비하여야 할 대상(=창작적 표현 부분)
[4] 민법 제750조에서 정한 ‘위법행위’의 의미 / 위법성은 문제가 되는 행위마다 개별적ㆍ상대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지 여부(적극) /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도 위법성이 인정되면 불법행위가 성립하는지 여부(적극)
[5]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어느 일방이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가지게 된 경우, 상대방이 상당한 이유 없이 이를 침해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및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상대방의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면서 상대방의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경우, 위법성이 인정되는지 여부(적극)
[6] 甲 사단법인이 乙 국립대학교의 연구원과 협력하여 수행한 조선시대 실학자 서유구가 편찬한 ‘임원경제지’ 번역 사업에서 ‘위선지’와 ‘만학지’의 일부에 관한 교감ㆍ표점 작업이 되어 있는 원문과 이를 번역한 번역문으로 이루어진 번역본 초고를 작성하였다가 위 협력 사업이 중간에 종결되자 乙 대학교 연구원에 번역본 초고를 폐기할 것과 이를 서적 출판 등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후 乙 대학교 연구원이 丙 등과 번역을 위한 계약을 체결한 다음 이들의 번역 작업을 거쳐 ‘위선지’의 번역서를 출판사인 丁 주식회사를 통해 출판하자, 甲 법인이 위 출판행위가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며 국가 및 丙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제반 사정들을 구체적으로 심리하여 이를 기초로 乙 대학교 연구원 등의 행위가 계약 체결을 위한 준비단계에서 협력관계나 신뢰관계에 있었던 甲 법인이 가지게 된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침해하고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판단하였어야 하는데도, 이와 달리 민법상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하여 창작성을 요구하고 있다. ‘창작성’이란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창작성이 인정되려면 적어도 어떠한 작품이 단순히 남의 것을 모방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사상이나 감정에 대한 창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야 한다.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는 표현, 즉 작성자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표현을 담고 있는 것은 창작물이라고 할 수 없다.
[2] 甲 사단법인의 저작물은 조선시대 실학자 서유구가 편찬한 ‘임원경제지’를 구성하는 16개의 지(志) 중 하나인 ‘위선지’의 원문에 교감(校勘), 표점(標點) 작업을 한 부분과 이를 번역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위 교감ㆍ표점 부분이 창작성을 가지는지 문제 된 사안에서, 甲 법인의 저작물에서 교감 작업을 통해 원문을 확정하는 것과 표점 작업을 통해 의미에 맞도록 적절한 표점부호를 선택하는 것은 모두 학술적 사상 그 자체에 해당하고, 이러한 학술적 사상을 문자나 표점부호 등으로 나타낸 甲 법인의 교감ㆍ표점 부분에 관해서는 甲 법인과 동일한 학술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논리구성상 그와 달리 표현하기 어렵거나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아 위 부분은 결국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甲 법인의 저작물 중 교감한 문자와 표점부호 등으로 나타난 표현에는 甲 법인의 창조적 개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사례.
[3]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침해자의 저작물이 저작권자의 저작물에 의거(依據)하여 그것을 이용하였어야 하고, 침해자의 저작물과 저작권자의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저작권의 보호 대상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말, 문자, 음, 색 등으로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인 표현 형식이므로,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가지고 대비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복제된 창작성 있는 표현 부분이 원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양적ㆍ질적 비중 등도 고려하여 복제권 등의 침해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4]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위법행위는 불법행위의 핵심적인 성립요건으로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 법질서의 관점에서 사회통념상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도 포함할 수 있는 탄력적인 개념이다.
불법행위의 성립요건으로서 위법성은 관련 행위 전체를 일체로 보아 판단하여 결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문제가 되는 행위마다 개별적ㆍ상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소유권을 비롯한 절대권을 침해한 경우뿐만 아니라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도 침해행위의 양태, 피침해이익의 성질과 그 정도에 비추어 그 위법성이 인정되면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5]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어느 일방이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가지게 된 경우에, 그러한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 상대방이 오히려 상당한 이유 없이 이를 침해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 체결의 준비 단계에서 협력관계에 있었던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상대방의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면서 상대방의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칠 뿐만 아니라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를 위반한 것으로서 그러한 행위의 위법성을 좀 더 쉽게 인정할 수 있다.
[6] 甲 사단법인이 乙 국립대학교의 연구원과 협력하여 수행한 조선시대 실학자 서유구가 편찬한 ‘임원경제지’ 번역 사업에서 ‘위선지’와 ‘만학지’의 일부에 관한 교감ㆍ표점 작업이 되어 있는 원문과 이를 번역한 번역문으로 이루어진 번역본 초고를 작성하였다가 위 협력 사업이 중간에 종결되자 乙 대학교 연구원에 번역본 초고를 폐기할 것과 이를 서적 출판 등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후 乙 대학교 연구원이 丙 등과 번역을 위한 계약을 체결한 다음 이들의 번역 작업을 거쳐 ‘위선지’의 번역서를 출판사인 丁 주식회사를 통해 출판하자, 甲 법인이 위 출판행위가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며 국가 및 丙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甲 법인의 번역본 초고가 작성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 및 높은 수준의 정신적 노력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점, 甲 법인의 번역본 초고는 乙 대학교 연구원과의 협력관계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번역 계약의 체결을 위한 준비과정에서 甲 법인의 노력과 투자에 의해 작성된 것이고, 甲 법인이 협력 사업 종료 후 번역본 초고의 폐기와 사용금지를 명시적으로 요청하기도 하였는데, 만일 乙 대학교 연구원 등이 위와 같은 사정을 인식하고서도 甲 법인의 번역본 초고를 무단으로 이용하여 위선지 번역서를 작성ㆍ출판한 것이라면 그 행위는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여지가 더욱 큰 점 등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사정들을 구체적으로 심리하여 이를 기초로 乙 대학교 연구원 등의 행위가 계약 체결을 위한 준비단계에서 협력관계나 신뢰관계에 있었던 甲 법인이 가지게 된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침해하고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판단하였어야 하는데도, 이와 달리 민법상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저작권법 제2조 제1호
[2] 저작권법 제2조 제1호
[3] 저작권법 제2조 제1호, 제16조
[4] 민법 제750조
[5] 민법 제2조, 제750조
[6] 민법 제2조, 제750조

【참조판례】


[1][3]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9도9601 판결(공2020상, 1046) / [1] 대법원 2011. 2. 10. 선고 2009도291 판결(공2011상, 594), 대법원 2018. 5. 15. 선고 2016다227625 판결(공2018상, 1061) / [3] 대법원 2000. 10. 24. 선고 99다10813 판결(공2000하, 2381), 대법원 2007. 12. 13. 선고 2005다35707 판결(공2008상, 1), 대법원 2012. 8. 30. 선고 2010다70520, 70537 판결 / [4] 대법원 2001. 2. 9. 선고 99다55434 판결(공2001상, 606)


【전문】


【원고, 상고인】
사단법인 임원경제연구소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광장 담당변호사 이은우 외 1인)

【피고, 피상고인】
대한민국 외 4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삼정 담당변호사 이영필 외 2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9. 8. 29. 선고 2019나2007790 판결

【주 문】
원심판결 중 금원 지급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나머지 상고를 기각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 제출기간이 지난 다음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들은 이를 보충하는 범위에서)를 판단한다. 


1.  원고 저작물의 교감ㆍ표점 부분이 저작권법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인지 여부(상고이유 제1점)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하여 창작성을 요구하고 있다. ‘창작성’이란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창작성이 인정되려면 적어도 어떠한 작품이 단순히 남의 것을 모방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사상이나 감정에 대한 창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야 한다(대법원 2018. 5. 15. 선고 2016다227625 판결,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9도9601 판결 참조).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는 표현, 즉 작성자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표현을 담고 있는 것은 창작물이라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1. 2. 10. 선고 2009도291 판결 등 참조).
원심판결 이유를 위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본다. 원심판결에 기재된 원고 저작물(이하 ‘원고 저작물’이라 한다)은 위선지의 원문에 교감(校勘), 표점(標點) 작업을 한 부분과 이를 번역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감(校勘)’은 문헌에 관한 여러 판본을 서로 비교ㆍ대조하여 문자나 어구의 진위를 고증하고 정확한 원문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표점(標點)’은 구두점이 없거나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은 한문 원문의 올바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적절한 표점부호를 표기하는 작업이다. 원고 저작물에서 교감 작업을 통해 원문을 확정하는 것과 표점 작업을 통해 의미에 맞도록 적절한 표점부호를 선택하는 것은 모두 학술적 사상 그 자체에 해당한다. 그러한 학술적 사상을 문자나 표점부호 등으로 나타낸 원고 저작물의 교감ㆍ표점 부분에 관해서는 원고와 동일한 학술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논리구성상 그와 달리 표현하기 어렵거나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으므로, 이 부분은 결국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 저작물 중 교감한 문자와 표점부호 등으로 나타난 표현에 원고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 있다고 보기 어렵다.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원고 저작물의 교감ㆍ표점 부분이 창작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옳다. 원심판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저작물의 창작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2.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는지 여부(상고이유 제2, 3점)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침해자의 저작물이 저작권자의 저작물에 의거(依據)하여 그것을 이용하였어야 하고, 침해자의 저작물과 저작권자의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2007. 12. 13. 선고 2005다35707 판결, 위 대법원 2019도9601 판결 참조). 저작권의 보호 대상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말, 문자, 음, 색 등으로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인 표현 형식이므로,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가지고 대비해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0. 10. 24. 선고 99다10813 판결 등 참조). 그리고 복제된 창작성 있는 표현 부분이 원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양적ㆍ질적 비중 등도 고려하여 복제권 등의 침해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8. 30. 선고 2010다70520, 70537 판결 참조).
원심은, 원심판결에 기재된 피고 저작물(이하 ‘피고 저작물’이라 한다)이 원고 저작물에 의거하여 작성된 사실을 추인할 수 있으나 원고 저작물과 피고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워 피고들이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위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판결에 저작물의 실질적 유사성과 저작권 침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3.  민법상 불법행위가 성립하는지 여부(상고이유 제4, 5점) 

 

가.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위법행위는 불법행위의 핵심적인 성립요건으로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 법질서의 관점에서 사회통념상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도 포함할 수 있는 탄력적인 개념이다.
불법행위의 성립요건으로서 위법성은 관련 행위 전체를 일체로 보아 판단하여 결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문제가 되는 행위마다 개별적ㆍ상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1. 2. 9. 선고 99다55434 판결 등 참조). 소유권을 비롯한 절대권을 침해한 경우뿐만 아니라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도 침해행위의 양태, 피침해이익의 성질과 그 정도에 비추어 그 위법성이 인정되면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대법원이 소유권 등 물권을 침해하지 않은 경우에도 민법 제750조의 위법행위 개념을 활용하여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타인의 성과물을 도용하였다는 이유로 위법성을 인정한 대법원판결도 이에 속한다. 즉, 대법원은 경쟁자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구축한 성과물을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여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경쟁자의 노력과 투자에 편승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얻고 경쟁자의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0. 8. 25.자 2008마1541 결정 참조).
또한 대법원은 계약 교섭의 부당파기에 관한 사례에서 일정한 요건하에 불법행위의 성립을 긍정해 왔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다53059 판결, 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2다32301 판결 등 참조).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어느 일방이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가지게 된 경우에, 그러한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 상대방이 오히려 상당한 이유 없이 이를 침해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 체결의 준비 단계에서 협력관계에 있었던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상대방의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면서 상대방의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칠 뿐만 아니라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를 위반한 것으로서 그러한 행위의 위법성을 좀 더 쉽게 인정할 수 있다.
 

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1) 조선시대 실학자 서유구가 편찬한 ‘임원경제지’는 전원생활을 하는 선비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 기예와 취미 등을 다룬 113권 분량의 백과전서로서 ‘본리지’, ‘위선지’, ‘만학지’ 등 총 16개의 지(志)로 구성되어 있다.
(2) 원고는 피고 대한민국 산하 ○○대학교 쌀ㆍ삶ㆍ문명연구원(이하 ‘○○대 문명연구원’이라 한다)과 협력하여 임원경제지의 번역 사업(이하 ‘이 사건 협력 사업’이라 한다)을 수행하기로 하였다.
(3) 원고는 임원경제지 중 ‘위선지’와 ‘만학지’의 번역 작업을 위하여 여러 필사본에 대한 종합적인 서지조사를 하고, 그중 하나의 필사본을 기초로 원문을 입력한 다음, 이를 다른 필사본과 비교ㆍ대조하여 오류가 있는 부분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교감 작업을 하였다. 이를 토대로 원문을 확정하고, 그에 대한 초벌 번역을 실시하면서 관련 원전이 수록된 자료들을 참조ㆍ활용하거나 번역자들 사이의 논의를 거쳐 올바른 표점을 검토하여 기재하는 방식으로 표점 작업을 하였다.
원고는 위와 같이 교감ㆍ표점 작업이 이루어진 원문을 기초로 해당 부분을 번역하고 그에 대한 교열 과정 등을 거침으로써, 결국 위선지와 만학지의 일부에 관하여 교감ㆍ표점 작업이 되어 있는 원문과 이를 번역한 번역문으로 이루어진 번역본 초고(이하 ‘원고 번역본 초고’라 한다)를 작성하였다.
(4) ○○대 문명연구원은 2009. 8. 5. 임원경제지 중 4개의 지(志)에 대한 번역자를 공개 모집한다는 내용의 공고를 게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대 문명연구원이 원고와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임원경제지 번역 사업을 진행하려 한다는 이유로 2009. 8. 13. ○○대 문명연구원에 이 사건 협력 사업의 종결을 통보하였다. 원고는 그와 함께 원고 번역본 초고를 비롯하여 ○○대 문명연구원이 취득한 원고의 번역ㆍ원문 자료 등을 폐기하고 위 자료를 서적 출판 또는 그 밖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하였다.
(5) 그 후 ○○대 문명연구원은 피고 3과 위선지의 번역을 위한 계약을, 피고 4, 피고 5와 만학지의 번역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이들의 번역 작업을 거쳐 2010. 9. 30. 만학지의 번역서가, 2011. 11. 20. 위선지의 번역서(이는 위에서 본 ‘피고 저작물’이다)가 피고 주식회사 소와당을 통하여 출판되었다.
(6) 피고 저작물과 원고 번역본 초고는 그 번역 작업의 기초가 되었던 필사본 일부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원고 번역본 초고에 있는 오류가 피고 저작물에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다수 존재하고,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세세한 번역 문구가 서로 일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다.  위와 같은 사실을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1) 원고 번역본 초고가 위선지와 만학지 중 일부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원고 번역본 초고가 작성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에는 위와 같이 다수의 번역자와 교열자 등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상당한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 그리고 높은 수준의 정신적 노력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2) 위선지와 만학지 원문은 기존의 중국 문헌을 그대로 발췌ㆍ인용한 부분을 다수 포함하고 있고, 4언 절구 등 비교적 단순한 문장 구조로 된 부분의 비중도 적지 않으며, 위선지와 만학지에서 발췌ㆍ인용한 기존 문헌에 이미 표점 등이 되어 있는 부분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원고 번역본 초고에는 원고가 나름대로 노력을 들여 독자적으로 연구ㆍ검토한 결과 교감ㆍ표점 및 번역 작업을 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러한 부분의 존재 여부나 비중 등을 살펴보지 않은 채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원고 번역본 초고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구축한 성과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기존 문헌에 이미 표점 등이 되어 있었던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자료를 탐색ㆍ수집하는 데 든 노력이나 이를 정리한 결과물이 가지는 가치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3) 원고 번역본 초고와 피고 저작물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된 오류나 번역 문구의 일치 사례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 저작물 등은 원고 번역본 초고에 의거하여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 문명연구원과 원고는 이 사건 협력 사업을 통하여 임원경제지의 번역ㆍ출간 작업을 함께 수행하였고, 그 결과 ○○대 문명연구원과 원고 사이에는 일정한 정도의 협력관계나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원고 번역본 초고는 바로 그러한 협력관계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번역 계약의 체결을 위한 준비 과정에서 원고의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작성된 것이다. 원고는 이 사건 협력 사업 종료 이후 원고 번역본 초고의 폐기와 사용금지를 명시적으로 요청하기도 하였다. 만일 피고들이 위와 같은 사정을 인식하고서도 원고 번역본 초고를 무단으로 이용하여 피고 저작물을 작성ㆍ출판한 것이라면, 피고들의 행위는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여지가 더욱 크다.
 

라.  원심으로서는 위와 같은 사정을 구체적으로 심리하여, 이를 기초로 피고들의 행위가 계약 체결을 위한 준비 단계에서 협력관계나 신뢰관계에 있었던 원고가 가지게 된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침해하고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민법상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을 배척하였다. 원심판결에는 불법행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4.  파기의 범위

 

선택적으로 병합된 청구를 모두 기각한 항소심판결에 대하여 상고심 법원이 선택적 청구 중 어느 하나의 청구에 관한 상고가 이유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를 전부 파기하여야 한다(대법원 1993. 12. 21. 선고 92다46226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이러한 법리는 성질상 선택적 관계에 있는 청구를 당사자가 심판의 순위를 붙여 청구한다는 취지에서 예비적으로 병합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대법원 2014. 12. 24. 선고 2012다35675 판결 참조).
기록에 따르면, 원고는 주위적으로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한 금지청구와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예비적으로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고의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는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와 그 청구의 기초가 동일하고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 청구로서, 성질상 선택적 관계에 있는 양 청구를 당사자가 심판의 순위를 붙여 청구를 한다는 취지에서 예비적으로 병합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 부분을 파기하는 이상, 이 부분과 성질상 선택적 관계에 있는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 부분도 함께 파기의 대상이 된다.
 

5.  결론

 

원심판결 중 금원 지급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나머지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노정희(재판장) 김재형(주심) 안철상 이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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